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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가족·비친족 가구 '쑥'
전국 101만5000명, 현행법상 사각지대
인적공제·돌봄휴직 등 법적부부에 한정
정부, '가족범위' 말 바꿔… 동거 등 배제
전문가 "이성애규범 패러다임 폐기해야"
부산시 부산진구에 사는 조성근(26) 씨는 "같이 사는 친구가 제일 가까운 가족이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조 씨는 친구와 함께 2년8개월째 동거 중이다. 그는 "친구와 함께 매일 운동을 다니고 주말에는 같이 게임을 하는 등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모(23) 씨는 대학 1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친구와 2년 넘게 동거 중이다. 그는 "같이 밥을 먹고 집에 함께 들어오니 심심할 틈이 없다"라며 "옷을 나눠 입을 때면 진짜 자매같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친구나 애인 등과 같이 사는 이른바 '비친족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서로를 단순한 동거인이 아닌 '가족'으로 인지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의 가족(家族)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을 말하며 혼인·혈연·입양 등으로 이뤄진 관계를 말한다. 전통적 가족의 의미는 시
대 변화에도 '건강가정기본법'(2004년 2월 제정)에서 규정하는 가족 정의(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 단위)의 바탕이 되고 있다.
◇비친족 가구원 100만명 돌파… 부산 5만4796명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의 변화를 현행법이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친족 가구원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8월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비친족 가구는 1년 전보다 11.6% 늘어난 47만2660가구로 통계 이래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부산의 비친족 가구 수는 1년 전보다 13.7% 증가한 2만5741 가구로 집계됐다. 가구원 수는 5만4796 명이다. 1만1270 가구에 불과했던 2015년과 비교하면 6년 만에 2배 이상이 된 것이다.
비친족 가구는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남끼리 사는 5인 이하의 가구를 의미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끼리 살거나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가구 등이 이에 속한다.
◇자연스럽게 가족이 된 그들… 친구를 넘어 '가족'
조성근 씨는 동거 시작 계기를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월세를 같이 내 경제적 부담을 줄여보자는 취지로 동거를 시작했다"라며 "처음엔 투룸에서 같이 살다가 오피스텔로 이사 올 수 있었다. 주거비를 친구와 같이 부담하기에 가능한 일이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이유에서 시작한 동거생활이지만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며 감정적으로 의지하는 그들은 현재 전통적 가족보다 깊은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고 있는 관계이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서 좋은 점들을 나열했다. 김모 씨는 "외롭기도 했을 자취 생활이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라서 즐겁다"라며 "혼자 살았으면 무서웠을 것 같은데, 친구와 함께라 보안 문제에 크게 신경을 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만 19세~69세 일반 국민 중 현재 남녀가 동거 중이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 3007명을 대상으로 한 '비혼 동거 실태 조사' 결과, 동거 사유에 대해 전 연령층이 '별다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38.6%)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 외의 사유로는 남성은 '집이 마련되지 않아서'(26.9%), 여성은 '아직 결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여'(28.1%)가 높았다.
연령대별로 20대는 '아직 결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38.6%)을, 30대는 '집이 마련되지 않아서'(29.6%)를 많이 뽑았다.
남자친구와 2년째 동거 중인 정모(27세) 씨도 결혼의 전 단계로 동거를 선택했다. 그는 "아직 결혼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고, 결혼 전에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 동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사실상 부부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통 가족 개념 무너져… "가족 범위 넓혀야"
전통적 가족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2020년 통계청에 따르면, 흔히 '정상 가족'으로 인식되는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구의 비율은 전체 가구 중 29.1%에 불과했다. 2016년 32%에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1인 가구 비중은 같은 기간 27.9%에서 31.7%로 늘어났다. 비친족 가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생겨나면서 법적 가족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 법률적 가족 범위에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확장하는 것에 대해 10명 중 6명 이상(64.6%)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적 가족 범위 확대'에 대한 동의율은 2019년 이후 매년 꾸준히 상승(60.1% → 64.6%)하는 추세이다.
또 응답자의 67.8%가 부모와 자녀 중심의 전통적 가족이 감소하는 사회 현상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전통적 가족에서 벗어나 스스로 가족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우리나라 현행법은 비친족 가구를 '가족'으로 규정하지 않아 차별 대우를 받을 때도 있다. 가족돌봄휴직과 휴가제도의 범위가 매우 좁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연말정산 소득공제는 부부에게만 적용되어 인적공제가 불가하다. 주택 청약과 특별공급도 법적 부부만 지원하기에 비친족 가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응급수술, 장례 등 긴급한 상황에서도 비친족 가구는 동거인의 동의서에 보호자로서 사인할 권한을 갖지 못한다. 자동차보험 할인, 통신사 가족 할인, 항공 마일리지 공유 등 다양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 씨는 "실제 법적 부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 청약이나 주거 대출도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다"라며 "가족이나 다름없지만, 실제 부부와는 다르게 지원받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 공염불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4월 동거 및 사실혼 부부나 학대 피해 아동 등을 돌보는 위탁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한 바 있다. 여가부는 "비혼·동거 가구, 위탁가정, 서로 돌보며 생계를 함께하는 노인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9월 24일 여가부는 가족의 법적 정의를 삭제한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논란이 일자 여가부는 "법적 가족 개념 정의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가족 형태가 급속하게 바뀌는 사회환경 변화를 고려해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고 해명했다. 이어 "사실혼·동거가족을 포함해 새 정부 국정과제인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 구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시도 비친족 가구 대책 없다
비친족 가구를 위한 부산시의 정책적 관심도 없는 실정이다. 부산시의 '2022년 여성가족국 시의회 업무보고'에는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 삶 지원'이라는 정책 방향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가족'의 범주에 1인 가구는 들어가 있었지만, 비친족 가구는 언급되지 못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은 여성가족부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의 사업을 지역에서 수행하는 기관인 부산시광역건강가정지원센터를 2009년 1월부터 수탁해 운영하고 있다. 부산여가원에서 가족 분야 연구를 맡고 있는 연구위 관계자에 따르면 진행 혹은 준비 중인 비친족 가구 사업이나 연구 자체가 없다고 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아직 비친족 가구는 샘플링하기 어려운 대상이며, 여가원은 건강가정기본법 등 법률을 바탕으로 지원 사업과 연구 등을 진행하기 때문에 비친족 가구와 관련한 사안은 아직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책적 지원은 법에 근거하기 때문에, 이렇게 법률이 현실에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인적공제 불가, 보호자 권한 미부여 등 앞서 언급했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사실혼과 비혼 동거 관계 등 비친족 가구가 법률상 가족의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
나기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9월 28일 열린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실제로 서로를 돌보고, 친밀한 유대를 만들어가는 시민의 삶을 지원하는 가족정책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몇 가지 가족의 유형을 정책의 대상으로 포섭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거·돌봄·노동·안전·죽음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불평등을 만들어 온 이성애규범적 가족 중심의 패러다임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건강가정기본법뿐만 아니라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규정)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동거도 계약 인정,부부 혜택 제공
비친족 가구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 때문에 해외에서는 비친족 가구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차별적 대우를 막을 수 있는 제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동거도 하나의 계약으로 인정하고, 부부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민연대계약' 제도를 20년 넘게 시행하고 있다. 1990년대 말 프랑스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시작하는 커플의 비중이 87%까지 상승했다.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1999년 시민연대계약 '팍스(PACS)'가 등장한 것이다. 이를 통해 법적 부부가 아니더라도 수술 등 의료결정권 및 공공주택 입주권 등을 보장함으로써 시민들이 서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2001년 '생활동반자법'을 입법해 혼인과 유사한 공동체를 법규화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동반자 관계 커플에게도 가족으로서의 권리와 부양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 책임 등이 발생한다.
일본도 최근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2015년 도쿄 시부야구는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통해 동거 중인 두 성인이 구 내에서 법률상 혼인에 상응하는 관계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원문링크_http://www.busan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746
선택 가족·비친족 가구 '쑥'
전국 101만5000명, 현행법상 사각지대
인적공제·돌봄휴직 등 법적부부에 한정
정부, '가족범위' 말 바꿔… 동거 등 배제
전문가 "이성애규범 패러다임 폐기해야"
부산시 부산진구에 사는 조성근(26) 씨는 "같이 사는 친구가 제일 가까운 가족이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조 씨는 친구와 함께 2년8개월째 동거 중이다. 그는 "친구와 함께 매일 운동을 다니고 주말에는 같이 게임을 하는 등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모(23) 씨는 대학 1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친구와 2년 넘게 동거 중이다. 그는 "같이 밥을 먹고 집에 함께 들어오니 심심할 틈이 없다"라며 "옷을 나눠 입을 때면 진짜 자매같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친구나 애인 등과 같이 사는 이른바 '비친족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서로를 단순한 동거인이 아닌 '가족'으로 인지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의 가족(家族)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을 말하며 혼인·혈연·입양 등으로 이뤄진 관계를 말한다. 전통적 가족의 의미는 시
대 변화에도 '건강가정기본법'(2004년 2월 제정)에서 규정하는 가족 정의(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 단위)의 바탕이 되고 있다.
◇비친족 가구원 100만명 돌파… 부산 5만4796명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의 변화를 현행법이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친족 가구원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8월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비친족 가구는 1년 전보다 11.6% 늘어난 47만2660가구로 통계 이래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부산의 비친족 가구 수는 1년 전보다 13.7% 증가한 2만5741 가구로 집계됐다. 가구원 수는 5만4796 명이다. 1만1270 가구에 불과했던 2015년과 비교하면 6년 만에 2배 이상이 된 것이다.
비친족 가구는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남끼리 사는 5인 이하의 가구를 의미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끼리 살거나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가구 등이 이에 속한다.
◇자연스럽게 가족이 된 그들… 친구를 넘어 '가족'
조성근 씨는 동거 시작 계기를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월세를 같이 내 경제적 부담을 줄여보자는 취지로 동거를 시작했다"라며 "처음엔 투룸에서 같이 살다가 오피스텔로 이사 올 수 있었다. 주거비를 친구와 같이 부담하기에 가능한 일이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이유에서 시작한 동거생활이지만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며 감정적으로 의지하는 그들은 현재 전통적 가족보다 깊은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고 있는 관계이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서 좋은 점들을 나열했다. 김모 씨는 "외롭기도 했을 자취 생활이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라서 즐겁다"라며 "혼자 살았으면 무서웠을 것 같은데, 친구와 함께라 보안 문제에 크게 신경을 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만 19세~69세 일반 국민 중 현재 남녀가 동거 중이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 3007명을 대상으로 한 '비혼 동거 실태 조사' 결과, 동거 사유에 대해 전 연령층이 '별다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38.6%)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 외의 사유로는 남성은 '집이 마련되지 않아서'(26.9%), 여성은 '아직 결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여'(28.1%)가 높았다.
연령대별로 20대는 '아직 결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38.6%)을, 30대는 '집이 마련되지 않아서'(29.6%)를 많이 뽑았다.
남자친구와 2년째 동거 중인 정모(27세) 씨도 결혼의 전 단계로 동거를 선택했다. 그는 "아직 결혼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고, 결혼 전에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 동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사실상 부부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통 가족 개념 무너져… "가족 범위 넓혀야"
전통적 가족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2020년 통계청에 따르면, 흔히 '정상 가족'으로 인식되는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구의 비율은 전체 가구 중 29.1%에 불과했다. 2016년 32%에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1인 가구 비중은 같은 기간 27.9%에서 31.7%로 늘어났다. 비친족 가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생겨나면서 법적 가족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 법률적 가족 범위에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확장하는 것에 대해 10명 중 6명 이상(64.6%)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적 가족 범위 확대'에 대한 동의율은 2019년 이후 매년 꾸준히 상승(60.1% → 64.6%)하는 추세이다.
또 응답자의 67.8%가 부모와 자녀 중심의 전통적 가족이 감소하는 사회 현상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전통적 가족에서 벗어나 스스로 가족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우리나라 현행법은 비친족 가구를 '가족'으로 규정하지 않아 차별 대우를 받을 때도 있다. 가족돌봄휴직과 휴가제도의 범위가 매우 좁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연말정산 소득공제는 부부에게만 적용되어 인적공제가 불가하다. 주택 청약과 특별공급도 법적 부부만 지원하기에 비친족 가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응급수술, 장례 등 긴급한 상황에서도 비친족 가구는 동거인의 동의서에 보호자로서 사인할 권한을 갖지 못한다. 자동차보험 할인, 통신사 가족 할인, 항공 마일리지 공유 등 다양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 씨는 "실제 법적 부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 청약이나 주거 대출도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다"라며 "가족이나 다름없지만, 실제 부부와는 다르게 지원받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 공염불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4월 동거 및 사실혼 부부나 학대 피해 아동 등을 돌보는 위탁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한 바 있다. 여가부는 "비혼·동거 가구, 위탁가정, 서로 돌보며 생계를 함께하는 노인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9월 24일 여가부는 가족의 법적 정의를 삭제한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논란이 일자 여가부는 "법적 가족 개념 정의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가족 형태가 급속하게 바뀌는 사회환경 변화를 고려해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고 해명했다. 이어 "사실혼·동거가족을 포함해 새 정부 국정과제인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 구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시도 비친족 가구 대책 없다
비친족 가구를 위한 부산시의 정책적 관심도 없는 실정이다. 부산시의 '2022년 여성가족국 시의회 업무보고'에는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 삶 지원'이라는 정책 방향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가족'의 범주에 1인 가구는 들어가 있었지만, 비친족 가구는 언급되지 못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은 여성가족부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의 사업을 지역에서 수행하는 기관인 부산시광역건강가정지원센터를 2009년 1월부터 수탁해 운영하고 있다. 부산여가원에서 가족 분야 연구를 맡고 있는 연구위 관계자에 따르면 진행 혹은 준비 중인 비친족 가구 사업이나 연구 자체가 없다고 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아직 비친족 가구는 샘플링하기 어려운 대상이며, 여가원은 건강가정기본법 등 법률을 바탕으로 지원 사업과 연구 등을 진행하기 때문에 비친족 가구와 관련한 사안은 아직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책적 지원은 법에 근거하기 때문에, 이렇게 법률이 현실에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인적공제 불가, 보호자 권한 미부여 등 앞서 언급했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사실혼과 비혼 동거 관계 등 비친족 가구가 법률상 가족의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
나기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9월 28일 열린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실제로 서로를 돌보고, 친밀한 유대를 만들어가는 시민의 삶을 지원하는 가족정책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몇 가지 가족의 유형을 정책의 대상으로 포섭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거·돌봄·노동·안전·죽음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불평등을 만들어 온 이성애규범적 가족 중심의 패러다임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건강가정기본법뿐만 아니라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규정)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동거도 계약 인정,부부 혜택 제공
비친족 가구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 때문에 해외에서는 비친족 가구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차별적 대우를 막을 수 있는 제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동거도 하나의 계약으로 인정하고, 부부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민연대계약' 제도를 20년 넘게 시행하고 있다. 1990년대 말 프랑스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시작하는 커플의 비중이 87%까지 상승했다.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1999년 시민연대계약 '팍스(PACS)'가 등장한 것이다. 이를 통해 법적 부부가 아니더라도 수술 등 의료결정권 및 공공주택 입주권 등을 보장함으로써 시민들이 서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2001년 '생활동반자법'을 입법해 혼인과 유사한 공동체를 법규화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동반자 관계 커플에게도 가족으로서의 권리와 부양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 책임 등이 발생한다.
일본도 최근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2015년 도쿄 시부야구는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통해 동거 중인 두 성인이 구 내에서 법률상 혼인에 상응하는 관계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