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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헬프-by 오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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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8-06-04 19:06 조회5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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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한민국. 최소한 흑과 백의 인종차별은 없지만 평등이란 무엇일까 의문을 갖게 하는 영화 더 헬프.

 

꿈을 포기한 채 커서 가정부가 될 것을 알았던 흑인여성 에이블린. 백인 아이 17명을 돌보는 동안 그녀들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자라야 했다. 일·가정 양립을 외치며 많은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일을 한다. 아이들은 종일반을 전전하다가 오후 늦게 돌봄선생님의 손에 맡겨진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는 일. 한국의 여성들의 삶 그중에서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에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 키우는 일은 절대 자유를 보장해 주는 여권신장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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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집에서 아침 8시부터 4시 까지 요리, 청소, 설거지, 다림질, 장보기 등 모든 일을 하면서 그들의 아이까지 돌본다. 때론 여주인의 옷맵시도 봐 주는 등 얼핏 보면 가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화장실을 함께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쓰는지 안 쓰는지 알기 위해 화장지의 칸을 세어 놓는 어떤 백인여성. 흑인과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면 백인에게 이상한 병균이 옮는다는 것 때문에 백인 여성들은 가정위생법안 즉, 질병예방차원에서 흑인화장실을 분리하자는 법안을 발의하자는 것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그들은 돌봄 노동자이지만 돌봄 노동자로의 인권은 없다. 그녀들은 노예였을까? 가정부였을까? 노예와 돌봄 노동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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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남을 잘 도와주는 흑인여성 미니. 그녀 또한 폭풍우 치는 밤에 밖에 설치 된 흑인 전용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백인의 화장실을 단 한번 사용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가 된다. 일자리를 잃는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남편의 구타뿐. 부당해고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뿐 이었다. 용기를 가지는 것, 용감한 사람이 아니어도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용기’였던 것이다.

 

흑인 여성 돌봄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백인 여성 유지니아. 그녀 역시도 콘스탄틴이라는 흑인 여성의 손에 키워졌다. 흑인 여성들의 돌봄노동은 노동자로서 권리도 인권도 인정받지 못했다. 훌륭한 미국여성으로 임명을 받은 유지니아의 엄마는 백인여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콘스탄틴을 부당 해고한 것이다. 그 이유 또한 백인 여성들의 식사시간에 멀리 사는 흑인 딸이 찾아와 방해를 했다는 이유로. 오랜만에 엄마의 얼굴만을 보고 부엌에서 기다리려는 흑인 딸이 무례했다는 이유로 29년을 일했지만 한 순간에 해고를 당해야 하는 것. 이것은 ‘고용’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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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도 백인도 여성도 남성도 모두 평등해야 하는 세상. 미니가 가져간 초콜릿파이를 맛있게 먹는 미니의 전주인 힐리에게 미니는 초콜릿파이의 재료를 말해준다. 멕시코에서 가져온 바닐라와 아주 특별한 것을 넣었다고. 똥을 넣어 만든 초콜릿파이. 흑인들과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지 않은 바로 그 질병의 ‘원인’을 먹을 수도 있다는 그 우수꽝스러운 이야기를 유지니아는 흑인들의 입장에서 책으로 엮는다. 마지막으로 그녀와 그녀를 키워 준 콘스탄틴과의 이야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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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 누구의 관점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을 증언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에게 당장 손해가 좀 오더라도 바른 말을 할 수 만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다. 다만 준비 없는 해고에 우리는 다 챙기지 못하고 나와야 하는 몇몇 옷가지와 소품들...그리고 작별해야 할 사람과의 충분한 이별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노예와 가정부의 차이는 바로 ‘고용’이냐 ‘종속’이냐 인 것이다. 위에 등장한 에이블린과 미니 그리고 콘스탄틴은 ‘고용’의 형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최소한 흑과 백의 인종차별은 없다는 대한민국의 2017년 또한 ‘고용’인지 ‘종속’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노동현장에 미혼모와 한부모 여성가장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삶이 아무리 궁핍해도 ‘고용’과 ‘종속’의 삶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대부분 정규직이 아닌 우리들에게 그 어떤 고용의 형태 안에서도 부당해고는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안정된 고용, 종속된 고용이 아닌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길엔 부당해고가 기다릴 수도 있고 미처 하지 못한 작별인사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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