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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Poetry, 2010)-사회에서 주목하지 않는 계층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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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7-09-22 13:52 조회1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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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아내였고 누군가의 어머니로 지낸 대다수의 여성들은 할머니가 된다. 누군가의 맘 한구석 언제나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할머니는 한국사회의 돌봄노동의 공백을 메꾸며 가족 내에서 손자녀를 기르거나 아픈 남편을 돌보거나, 사회서비스 노동자로 장애인과 환자들을 돌본다.

 

이창동은 영화 ‘시(詩)’에서 새로운 할머니를 만들어 낸다. 생활보호 대상자로 치매환자의 간병일을 하며 혼자 손자를 키우는 억척스러운 할머니. 시 수업을 받으며 ‘아름다운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조금은 낯선 할머니. 배우 윤정희가 아니었다면 간병일을 하며 시를 쓰고 싶어 하는 할머니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컴퓨터 앞에서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손자 종욱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할머니 미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보고 느끼고 사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그 사물이 내게 무슨 말을 거는지 알려고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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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시상(詩想)은 언제 찾아와요?”

미자는 시 수업에서 조금은 엉뚱한 질문을 한다.

“시상은 찾아오지 않아요. 내가 찾아가서 빌어야 해요. 내가 사정을 해야 줄 둥 말 둥 이예요...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내 주위에 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 가슴 속에 갇혀 있는 시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해 준 시 수업 선생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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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자에게 펼쳐 진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하는 시 수업에 미자는 세 살 혹은 네 살일 지모를 기억을 떠 올리며 흐느껴 운다. 엄마가 아팠고 7살 위의 언니가 자신을 몹시 예뻐하며 키운 기억을 가진 미자. 행복한 그녀의 기억은 그 이후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창동 감독은 치열하고 뜨거운 삶의 이야기들을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담담함과 잔잔함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시리고도 뜨거운 ‘불꽃을 머금은 얼음’하나 가슴에 남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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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의 또 다른 매력은 ‘폭력’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어린 미자가 당했을 지도 모를 ‘폭력’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손자는 ‘폭력’의 가해자로 등장한다. 세상은 약자들이 당한 ‘폭력’에 대해 적당한 ‘보상’으로 대응을 한다. 사건의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사건에는 가해자와 약한 피해자가 등장한다. 특별히 성폭력 사건인 경우 그리고 가해자가 힘 있는 남자인 경우, 가해자들은 본인들이 또 다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세상을 이창동감독은 딥포커스 기법을 이용하여 다섯 명의 아버지가 ‘안’에서 가해자인 아들들을 살릴 궁리를 하는 동안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개념 없는 할머니’ 양미자를 등장 시킨다. 딥포커스 기법은 관객들이 모든 피사체의 선택권을 넘겨받는 사실주의 기법이다. 성폭행을 해결하는 방법이 가부장적인 남성들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이창동 감독은 영화 곳곳 숨겨 둔 촬영기법으로 알려주고 있다. 창문 밖에서 미자는 ‘피’를 연상하는 꽃을 마주한다. ‘피 같이 붉은 꽃’ 맨드라미의 꽃말은 ‘방패’이다. 아마도 이창동 감독은 이 장면에서 이 영화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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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갈망하는 너무도 예쁜 할머니 미자는 창문 너머의 고통을 마주하고 아름다움이란 ‘피’를 동반한 고통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할머니로써 방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우선 손주의 합의금 500만원을 마련한다. 그리고 고통을 마주한 할머니 미자는 손주를 감옥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할머니 미자는 죽은 희진의 목소리로 시를 쓴다. 언뜻 보면 여성들을 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와 경찰과 교장인 ‘남성’들은 희진의 죽음을 위자료로 해결을 한다. 반면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개념 없는 할머니’ 미자는 고통을 동반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여성인 나에게 아름다움은 내 안에 있으며 ‘고통’을 동반하지 않고는 결코 단 한 줄의 아름다움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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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발표하는 마지막 시간 미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쓰지 못한 시 한편과 꽃다발 하나를 남겨놓고 영화는 끝난다. 누구도 미자의 행방을 알 수는 없으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 나의 결론은 ‘살구’다. 아마도 양미자 할머니는 “다음 생을 준비하기 위해 제 스스로 땅에 떨어지는” 생의 역할에 충실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나의 역할도 ‘살구’ 이상은 아닐 것이라는 ‘불꽃을 머금은 얼음’ 하나 가슴에 새겨 본다.

 

아네스의 노래

 

그 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 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나의 오랜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 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GSQv1f7TJ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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