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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심명옥(서울한부모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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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7-03-30 13:53 조회5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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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상영이 끝난 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시·공은 물론 성별까지도 뛰어 넘어 나의 현실과 다니엘 블레이크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진한 여운이 남는 영화다.
 

-모든 상담원 통화 중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 1시간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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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을 넘게 목수로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던 주인공 다니엘 브레이크, 아내와 사별하고 심장질환으로 일하지 말라는 의사소견으로 질병수당을 신청하지만 현실과 사회모순에 부딪쳐 번번이 거절당하며 행정절차를 따라갈 수 없는 노령의 다니엘 브레이크는 좌절한다.

한편,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는 살 곳을 찾아 무너져 내리는 전기 끊긴 집에 살며 일자리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녀보지만 이 또한 계속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엘과 케이티는 우연히 관공서에서 만나게 되고 케이티의 사정을 알게 된 다니엘이 케이티의 집수리를 도와주면서 점차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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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비자도, 서비스 노동자도 아닙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람이며, 시민입니다.

 

케이티는 극심한 생활고에 생리대를 훔치고 밥이 없어 아이들 대신 굶는다.

결국은 매춘부로 발을 들여놓은 케이티. 그리고 다니엘은 구직센터 외벽에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쓰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절정을 이룬다.

사람은 없고 제도만 있고, 국민은 없고 국가만 있는, 시민은 없고 공무원만 있는 영국의 사회복지제도가 내가 들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었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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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얼마 후 신림동에 거주하던 60대의 남자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을 매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서 보고 일상적 안타까움보다 더 큰 슬픔과 화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말한다.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복지혜택에 길들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등 복지사각지대에서 힘겨움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 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일상적으로 넘겨 버린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더해진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에 대해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인간다운 삶도 최소한의 복지혜택도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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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후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라는 가슴 뭉클한 수상 소감을 전하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감독은 “사람들에게 ‘가난은 너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이다”라는 날선 비판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BBC에서 TV다큐 작업을 시작으로 방송과 영화 두 곳을 부지런히 오가며 다소 거칠고 불편한 사회,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어 온 켄 로치 감독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에는 역부족인 약자들 편에서 관찰자로 때론 대변자로 세상을 향한 일침을 영화에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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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역시 약자와 소외계층의 안전망이 되어야 하는 복지정책이 운영자 위주의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전락한 영국의 현실을 조롱과 위트,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방불케하는 비전문 엑스트라들의 구성으로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켄 로치 감독은 목수 출신의 다니엘이 디지털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통해 답답한 현실에 위트와 유머를 통해 페이소스를 담아내기를 잊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나를 도와주는가? 나는 이웃의 사정을 알고 있는가? 같은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운동적 거대 담론은 결코 해내지 못할 더욱 강력한 스토리텔링으로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낸다.​ 

 

죽어라 노력해서 평범해지는 삶이 아닌 평범한 기본 권리를 누리는 건 누구나 가능한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사회 노력하거나 나를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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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박노해

 

 

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외로워도 슬퍼도 죽지 마라.

괴로워도 억울해도 죽지 마라.

 

시위하다 맞아 죽지도 말고

굶어 죽거나 불타 죽지도 말고

 

가난한 자는 죽을 자격도 없다.

 

가난한 자는 투신해도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가난한 자는 분신해도

아주 차가운 눈빛 하나

 

가난한 자의 생명가치는 싸다

 

시장에서 저렴한 너는

잉여인간에 불과한 너는

몸값도 싸고 꿈도 싸고

진실도 싸고 목숨도 싸다.

 

가난한 자는 죽을 권리도 없다.

죽으려거든 전태일의 시대로 가 죽든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가 죽든가

 

제발, 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선진화의 시장에서는 죽지 마라.

돈의 민주주의에서는 죽지 마라.

 

아, 가난한 자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우리 죽지 말고 싸우고

죽을 만큼 사랑하자.

 

가난한 우리는 가난하여 오직 삶밖에 없기에

사랑으로 손잡고 사랑으로 저항하고

죽을 힘으로 싸우고 죽을 힘으로 살아가자.

 

제발, 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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