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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의 마음풍경 ⑧]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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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4-12 11:21 조회6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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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더라.”

10년 전 결혼식을 앞 둔 나에게 사촌은 말했다.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이지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 때 나는 가볍게 웃어 넘겼다. 26세. 가장 꽃다울 나이에 남편을 하늘로 보냈다. 뱃속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어린 생명이 자라고 있었던 바로 그 시절, 사촌의 그 말은 나를 지치도록 서럽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35세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 식당을 하던 시절, 일을 보기위해 나섰던 아빠는 집을 나서다말고 집안으로 들어오셨고 엄마는 급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오신 아빠께 이유를 물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던 아빠는 고개를 떨궜다. 다시 고개를 들지 않았던 아빠는 그대로 하늘로 가셨다. 엄마는 숙인 고개를 바로 들지 않아서 늘 그렇듯 장난인 줄 알았다고 했다. 웃으며 뭐하냐고, 얼른 대답하라고, 왜 일가다 말고 돌아왔냐고. 아빠는 대답은 없었고 그렇게 어이없게 아빠는 돌아가셨다.

그 이후 엄마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다툼 끝에 식당은 작은 아빠의 것이 되었고 엄마는 맨손으로 다시 시작하셔야 했다. 젊은 나이에 나와 내 동생을 키우기 위해, 식당을 하려고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무던히 일만 하셨다. 새벽같이 일어나신 엄마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공사장 막일부터 식당 찬모, 공장 생활까지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그렇게 일만하셨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서는 무릎 꿇고 걸레로 방을 닦았고, 세탁기가 없이 맨손으로 우리들의 옷을 늘 깨끗이 빨아주셨으며 학교에서 기죽지 말라고 정성들인 반찬을 도시락에 담아주셨다. 엄마는 잠이 없으신 분이신 줄 알았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부지런히 살고 계신 우리엄마.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난다. 두 딸을 훌륭히 길러내신 엄마에게 늘 존경과 감사한 마음이 컸다.

스물여섯 살이던 그 해, 남편이 죽었다. 내 옆에서 너무 건강하던 남편은 어이없게도 거친 숨소리를 내쉬다가 하룻밤사이에 운명을 달리했다. 사인은 아빠와 같은 심장마비. 그 때, 사촌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울렸다.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더라.’

‘딸은 엄마팔자 닮는다더라.’

‘딸은 엄마팔자 닮는다더라.’

지켜주고 싶고 더없이 사랑하는 엄마였는데 나는 왜 엄마와 너무도 똑같은 삶을 살아야하는 가 싶은 생각에, 고생스러운 팔자를 남겨준 엄마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우리 외할머니도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평생 일만하며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가난하고 힘든 과부 팔자를 남겨준 외할머니도, 엄마도 미웠다. 왜 이런 팔자를 물려주는 것인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난 하고 싶은 공부 다 하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소리치며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도망치듯 선택한 결혼이었다. 마침 정말 좋은 사람이 옆에 있던 차에 엄마의 반대를 무릎 쓰고 나는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국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엄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다른 엄마들처럼 사돈에게 돈 몇 푼이라도 쥐어달라고 무릎 꿇지 못하냐고 소리도 질렀다. 가난하면 고개 숙일 줄도 알아야지 그깟 자존심이 대수냐고. 엄마 자존심이 딸의 삶보다 더 중요하냐고 다 엄마 때문이라고 이 모든 것은 엄마의 팔자를 닮아서 그런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라고 모진 말도 많이 했다.

그러나 엄마는 이미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린 딸이 혼자 애 키우기 힘드니 도와달라고. 못난 엄마를 만나 고생만 하다가 시집간 아이라고 먹고 살게는 해야 되지 않느냐며. 우리 딸은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애 버리고 자기 잘 살겠다고 도망치는 그런 무책임한 아이가 아니라고. 한 번만 잘 봐달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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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알게 된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기적인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모진 말을 하며 엄마의 삶을 부정했을까 싶은 생각에 죄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난 엄마 팔자를 닮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자라는 것은 삶을 닮는다는 것이다. 삶(life)은 그 어원이 lip([살아] 남아 있다) 즉, ‘살아남아 있다’라고 한다. 엄마는 나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물려주신 것이다. 엄마는 어려움이 닥쳐도 의지만 있으면 다 헤쳐 나갈 수 있고 큰 꿈을 꾸며 세상을 살아야한다는 것을, 시련이 닥쳐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엄마는 자신의 인생으로 증명하셨다.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힘을 물려주신 엄마를 나는 원망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해 전 엄마는 디스크가 터져 두 번째 디스크 수술을 받고, 악성 암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적이 있었다.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으시고 심신이 아프셔도 엄마는 웃으셨다. 그렇게 웃으며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알려주신 분. 긍정적인 마음은 암과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신 분. 고난이 와도 넘어설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신 분.

지금 나는 그런 엄마 팔자를 닮아서 좋다. 엄마는 시련을 슬기롭게 이기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알려주신 분이니까. 그리고 참 행복을 깨닫게 해 주신 분이니까.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라는 말은 엄마의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닮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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