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한부모의 마음풍경④] “이젠 숨거나 도망가지 않을 것 같다” > 언론보도

본문 바로가기

알림마당

[여성신문 한부모의 마음풍경④] “이젠 숨거나 도망가지 않을 것 같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3-23 11:21 조회776회 댓글0건

본문

남편이 사고로 죽고 중1, 초4의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오롯이 생계를 떠맡아야 했던 10년 전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를 몰고 나갔고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흔히 있는 일이었고 보험으로 해결되는 아주 가벼운 사고였다. 당황스러운 그 순간 앞 차에 탄 여성은 차 밖으로 나오지 않고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보험회사 직원에게 남편의 전화라면서 휴대폰을 건넸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난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연신 잘못했다고 말했고 전화만 걸던 그 여성은 뒷목을 잡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고 난 차를 몰고 오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렇게 서러웠을까?

 

그 여성과의 힘겨루기에서 우선 나는 밀렸다. 뒤차였고 사고 경험도 없었으며 차종도 밀렸다. 무엇보다 전화할 곳이 없었다. 처음엔 남편이 없다는 것이 서러운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그리 서럽게 울진 않았을 것이다. 맘 편히 나의 사고를 전 할 그 누군가가 나에겐 없었다. 남편 자랑 흐드러지게 늘어놓는 친구에게도, 과부인 딸이 늘 맘에 걸려하시는 부모님과 친정 식구들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당연히 어려울 수 있고, 사춘기의 아이들을 두었으니 푸념할 그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나는 오히려 사람들과 감정 교류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강해지고 싶어서였다.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사람들과의 단절을 가져왔다. 온전한 가족으로 보이고 싶었던 나는 나와 아이들을 치장하고 있었다. 명절이나 휴가 때 아무리 집에 있어도 사람들에게 만나자고 하지 않거나 부탁할 일이 생겨도 부담을 줄까 두려워 좀처럼 남에게 부탁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뒤처질까 늘 노심초사했으며 초조하고 불안한 일상의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 수많은 강의와 독서에 매달렸다.

혼자서도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는 완벽함으로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싶은 그 순간 나는 매 순간 위장을 했다. 남편이 없는 것도 들키지 말아야 했고 혼자 벌어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유행이 지나 추가세일을 하는 옷만 입곤 했다. 가끔은 적은 돈이지만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사들이고, 물건 값을 흥정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굳이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은 아마도 나와 같은 한부모들에게 보이는 흔한 증후군일 것이다. 나는 가끔 한부모임을 드러낼 수 없는 이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세상의 차별보다는 내 안의 차별과 편견의 잣대가 더욱 나를 고립으로 몰고 갔다. 아주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누군가를 의지하려는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 나를 꽁꽁 묶어 놓은 것이었다.

더 이상 접촉사고는 없었지만 마음 속에서 가벼운 사고들은 수도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10년 동안 수많은 강의와 독서는 나를 부유하게 만들지 못했지만 어슴푸레 보이는 내 마음 한 조각은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강해지고 싶은 마음 뒤에 숨어 있던 나의 연약함인데, 이 ‘연약함’은 위장하고 감춘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적절한 때에 드러내야 하는 것이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지금보다 젊었던 10년 전 나는 가벼운 접촉사고에 그렇게 많이 울었던 것이다.

“요즘은 어때?”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별로 나아진 것은 없어. 하지만 이젠 숨거나 도망가진 않을 것 같아”라고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모” 행복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한부모로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아야 했던 지금보다 젊었던 나. 사고로 남편을 잃었지만 보상금 한 푼 없이 내 힘으로만 살아야 했던 지난날의 나. 이제 두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만의 삶을 살 수 있는 지금의 나.

딸로, 아내로, 엄마로가 아닌 진짜 여성으로의 삶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사 더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상단으로